5.16혁명 일어난 역사적인 날/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 5.16혁명이 일어난 역사적인 날 -

- 1961년5월16일,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중령 핵심 -

- 혁명군 새벽3시경 한강도로 통과 서울진입 성공 -

김일복 기자

작성 2020.05.17 17:56 수정 2020.05.17 22:33

대한뉴스 제341호-5.16 군사혁명. 기사 이미지 영상]

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사에 우뚝서게한 위대한 역사 5.16혁명이 변변한 기념식도 없이 적폐인 것처럼 치부되어 잊혀져가는 서글픈 현실을 개탄하며 그날을 회고해 본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중령을 핵심으로 혁명군은 새벽 3시경 한강인 도로를 통과하여 서울진입에 성공하였다. 이들은 중앙청 및 방송국 등 목표를 일제히 점거하고, 5시 첫 방송을 통해 거사의 명분을 밝히는 한편, 6개항의 혁명공약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그 날 아침 시청앞에서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박정희 소장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혁명군은 오전 9시에는 군사혁명위원회 명의의 포고령으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오후 7시를 기해 장면 정권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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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새벽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장면총리는 숙소인 반도호텔을 빠져나와 혜화동 카르멜 수녀원으로 피신한후 외부와 모든 연락을 끓었다. 주한미군 사령관 매그루더와 1군사령관 이한림장군은 진압과 반격을 모색했지만 실질적 군 통수권자인 장면과의 연락 두절로 역전의 기회를 상실했다.


갑작스런 상황을 접한 장도영을 비롯한 각 군 참모총장은 삼각지에 위치한 육군본부에 모여 거취를 모색하다가 혁명주체세력인 장경순 장군의 끈질긴 설득으로 혁명을 지지하는데 동참하게 된다. 뉴스에서는 혁명의 주역이 6.25전쟁영웅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으로 대내외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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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부터 며칠간 일간신문은 거의 절반이 검열에 걸려 하얗게 지워졌고, 국민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하게 알 수도 없었다. 국회가 해산되고 전국 학교는 휴교를 했다. 계엄포고령에 따라 오후 7시 부터 통행금지가 적용되었다.


혁명군이 점령한 관공서와 학교정문에는 마대로 만든 진지에 기관총이 거치되었다. 휴교기간에 출근했던 교사들은 혁명군의 삼엄한 군기를 보고 기가 질렸다. 그러나 혁명군은 계엄령을 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군을 완전장악하지 못했다.


5월18일 육사생도들이 시가행진과 혁명지지선언을 함에 따라 그때까지 관망하든 전방의 주요 지휘관들이 지지로 돌아서면서 거사는 성공하게 된다. 그 후 혁명과업실천을 위해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설립되었고, 장도영 장군이 의장. 박정희 장군이 부의장이 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2년간 지속된 군사정부에서는 현역 소장들이 장관이 되었고, 준장급 장군이 도지사가 되었다. 한신이 내무부장관, 정래력이 상공부장관, 장경순이 농림부장관을 맡았다. 경찰을 지휘하는 치안국장은 육군 헌병감이, 경찰서에는 소령급 장교들이 보직되었다.


혁명검찰은 성미가 대쪽같았던 박창암 대령이 담당하게 된다. 박창암 혁명재판소장은 머리를 박박깎고 전투복을 입고 가스에 수류탄을 줄줄이 매달고 권총차고 사무실에 출근했다고 한다. 새로이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고 초대 정보부장은 김종필이 맡게 된다.


혁명정부는 국가질서를 바로 잡기위해 사회악의 근원인 정치깡패를 비롯한 폭력배부터 검거했다. 체포된깡패들은 머리에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고깔쓰고 :깡패생활 청산하고 바르게 살겠습니다" 프랑카드를 들고 시가행진을 했다.


이들은 이후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로 보내져 도로를 닦았다. 서귀포에서 한라산을 횡단하는 5.16도로는 깡패들이 만든 도로다. 4.19이후 자유화 물결을 타고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길렀던 중.고등학생들은 다시 박박머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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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혁명검찰은 4.19당시 발포책임자인 최인규 내무부장관과 이정재 등 3.15부정선거의 원흉들과 정치깡패들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였다, 신문1면 톱기사로 교수형을 당한 그들의 시신이 매일 공개되면서 사회기강은 잡혀갔다.


몇 개월 후 최고회의 의장인 장도영 장군이 반혁명분자로 지목되어 제거되었고, 모든 권력은 박정희 장군이 장악했다. 6.25전쟁시부터 미8군사령관 벤프리트장군의 제안으로 많은 장교들을 미국에 유학을 다녀와 선진문물과 행정을 가장 먼저 경험한 군 엘리트들이 주축이 되어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고, 시골처녀들의 긴머리채를 잘라 가발을 만들면서 수출 입국의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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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가 되면 화투를 들고 노름을 일삼던 농부들에게 가마니 짜기 등의 일감을 주었고, 재방건설 등 국토건설사업을 벌였다. 도심의 거리를 메웠던 수많은 거지들과 상이군인들도 사라졌다. 한 마을에 라디오 가진 가구가 거의 없었던 농촌지역에도 면소재지에 방송엠프를 설치하고 집집마다 유선스피커를 달아 하루종일 방송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와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어떤 마을 할아버지는 스피커에서 열심히 방송하는 것을 들으며, 그 곳에 사람이 있는 줄알고 스피커 안에 밥을 집어넣었다고하는 우스게 소리도 들렸다.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올해는 일하는 해 모두 나서라, 새살림 일깨우는 태양이 떴다"라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국민들은 공장으로 논밭으로 나갔다.


이러한 국민운동이 근면, 자조, 협동을 모토로 내건 새마을운동으로 발전함으로써, 수천년 이어져온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꼬불꼬불하던 오솔길은 넓게 퍼졌다. 울산공단, 창원공단 등 수출공단이 건설되면서 5천년간 가난에 허덕이든 나라는 급속하게 농경사회를 탈피하고 산업화 사회로 치닫게 되었으며, 경제개발계획이 성공함에 따라 신흥공업국가로 발돋움 하게된다.


조선시대의 가렴주구와 일제의 폭정으로 주눅이 들어 고향을 벗어나면 바로 죽는 줄 알았던 어리숙한 우리 청년들은 서독 광부파견, 월남전참전, 중동 건설현장을 경험하면서 점차 국제사회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후 세계 각국을 누비면서 수출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첨병이 되었다.


1965년 이명박과 이재오 등 학생운동권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건국후 최대 외교현안이었던 한일국교정상화를 함으로써 포항제철을 건설하는 자본금을 마련했고, 김영삼, 김대중 등 야당정치인들이 "자동차도 없는 나라에서 아까운 농토에 고속도로가 웬말이냐?"라면서 불도져 앞에 드러누워도 고속도로는 차질없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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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와 국가기간사업이 건설되면서 경제성장은 탄력을 받게 되었고, 그 후 우리나라는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한민족 역사상 가잔 큰 기적을 만들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정의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통상 혁명이라고 함은 피지배계급이 정권을 타도하고 집권하는 것을 말하고, 쿠데타는 지배세력의 일부가 정권을 타도하고 집권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조선의 개국처럼 왕조가 바뀌는 것을 역성혁명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혁명은 정당하고 쿠데타는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기존의 체제와 법질서를 파괴하는 불법행위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따라서 혁명이나 쿠데타 공히 성공하지 못한경우에는 폭동이나 반란으로 취급받게 된다.


진정한 혁명을 하면 정권교체 뿐만아니라 국민의 의식과 행동, 관습까지 변한다. 조선조 역성혁명을 보더라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한후 불교국가에서 유교국가로 변하고, 정치제도로 부터 신분제도, 백성들의 의식과 복식까지 다 바뀌어 졌다.


5.16군사혁명은 학문적인 정의로는 비록 군사쿠데타라고 규정되지만, 그 후 전개된 놀라운 국가발전과 국민생활의 변화, 국민의식개조, 제도 혁신을 비롯하여 개발도상국가의 모델이 된 경제개발전략, 새마을 운동들을 보면 어떠한 혁명 못지않는 세계사적인 혁명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는 국민소득 68달러라는 세계 최빈국을 3만달러의 선진국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은 위대한 우리 국민을 일깨운 5.16혁명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만일 5.16혁명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캄보디아나 라오스 같은 나라 수준에 머믈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정치적의도로 5.16혁명을 헐띁고 깎아 내리는데 몰입하고 있지만, 5.16을 찬양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모두 5.16혁명이 다져놓은 굳건한 토대위에 그들의 생명을 뿌리박고 있으며, 그 자양분을 먹고 마시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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