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역사유적지구 탐방/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 -

- 백화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

- 낙화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

김일복 기자

작성 2020.06.10 23:41 수정 2020.06.11 23:30
백제역사유적지구. 입구. 2020년 6월 10일 촬영.

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대한민국 중 서부에 있는 백제의 왕도와 밀접하게 연관된 유적으로 주변국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적 발전이 결정에 이른 백제 후기 (475-660)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약 700년간 이어진 한국의 고대 왕국 중 하나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웅진(공주)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인 공산성, 송산리고관군 사비(부여)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인 관복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 사비 시기의 수도인 부여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하여 금마져(익산)에 조성된 복도와 관련된 유적인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적들은 백제가 중국으로부터 도시계획 건축기술, 예술, 종교 등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킨 뒤, 일본과 동아시아에 전해주었음을 증명하는 유산이다.

백화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백화정은 백제역사유적지구,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2020년 6월 10일 촬영.

[백화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108호, 부여 부소산성 북쪽 금강변의 낙화암 정상부에 있는 육각의 정자건물이다. 1929년 당시 군수 홍한표의 발의로 부풍시사라는 사우회에서 세웠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소동파가 해주에 귀향가 있을적에 성 밖의 서호를 보고 지은 강금 수사 백화주라는 시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부여 외곽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낮은 산들이 어울려,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주 일품이어서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대하는 듯 하여 부여를 찿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

백화정. 백제역사유적지구. 낙화암, 백제가 멸망하자 궁인들이 화를 피하지 못할 줄 알고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부여성 북쪽 구석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2020년 6월 10일 촬영.

[낙화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110호, 낙화암은 부소산성 북쪽과 백마강 변에 위치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20년(660)백제가 멸망하자 궁인들이 화를 피하지 못할줄 알고,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부여성 북쪽 구석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궁인을 꽃으로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으로 불렀다. 높이는 60센티미터 정도이며 절벽 아래에 승시열의 글씨로 전해지는 낙화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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