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여자 [국정일보 문이주 기자]

문이주 기자

작성 2020.07.20 14:54 수정 2020.07.20 14:54


문이주 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양조회사는 18971월에 황해도 해주에 살던 양영원에게 누룩회사 설립을 허가했다.

서양사람들도 요새로 말하면 카페같은 서양주막을 서울 한 복판에 세우고 큰 재미를 보았다.

서울 장안에 고급 술집 요정이 생기기 시작하자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주조장이 필요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맥주는 상류층에서는 흔히 마시는 술이 되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 일본군이 상륙해 오자 왕궁에서는 일본군을 위로한다고 수백 상자의 맥주를 사서 보낸 일도 있었다.

또 일본에서 돌아온 송병준과 이용구도 시골에서 올라온 일진회회원들에게 맥주를 먹여 정신을 흐려 놓고 논밭을 팔아 바치면 벼슬 한자리씩을 주겠다고 하며 정치판으로 내몰았다.

조선이 망하자 궁중요리사를 하던 안순환은 재빨리 송병준과 짜고 명월관을 차렸다.

송병준은 일진회를 만들어 한일합방을 하는데 공로가 많은 매국노인줄 알았더니, 우리나라 술의 역사에도 빠뜨릴 수 없는 공로자인 것이다,

나라를 잃고 궁중 정리작업으로 일터를 잃은 나랏님의 꽃이던 궁녀들은 이제 거리로 풀려 명월관에 나와서 뭇 사람에게 술을 파는 꽃 노릇을 하게 되었다.

새 시대의 바람둥이들은 값비싼 난봉을 부릴 절호의 기회를 만나 하룻밤에 백 마지기의 논을 바치는 소문난 명물이 속속 탄생하게 되었다.

절세의 미녀라는 서양의 클레오파트라는 왼쪽 눈이 약간 작은 짝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부색이 거무스름한 17세의 이집트 여왕 앞에서 카이사르는 넋을 잃었고, 안토니오는 비장하게 전사하였다.

당나라 명황제의 양귀비도 냇가에서 빨레하던 비천한집의 여자였다. 그랬어도 일국의 군왕들을 무릎 꿇게 하였으니 귀천을 따질 수 있겠는가.

기생과 선비는 떨어질 수 없는 멋을 아는 부류이다. 창조(創造)의 동인이던 김인환은 명기 안금향을 짝사랑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홧김에 상해로 갔고, 안금향은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배우로 청춘을 불태웠다.

사군자를 잘 치던 오향선은 명배우 나운규에게 반해 자기 손수건에다 빨간 입술연지를 발라 입술연애편지를 보낸 로맨스를 엮었고, 나중에 유신방이란 예명으로 직접 영화배우로 열연하가도 했다.

또 백운선은 천하의 갑부 민정식의 애인이 되었고, 강명화는 대구의 장길상의 외아들 장병천과 순결한 사랑을 하다가 한 많은 음독자살로 막을 내려 세상의 눈물을 자아냈다.

이즈음, 유성기 소리판을 타고 대중들을 웃기고 울렸다. 유성기시대의 장안 일등 명기는 현계옥이었다.

뒷날 강명화가 나욌고, 윤심덕의 연애나 이진홍의 빨간 망토, 김춘외춘의 미모도 일세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현계옥의 멋에 장안에서 풍류를 즐기던 젊은 남자들은 허리를 못 펴고 그저 벌벌 기어 다닐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데 현계옥이 돌연 행방불명이 되어 그녀에 대한 풍문은 꼬리를 물었다.

안 참새때들이 조잘대는 대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것도 아니고, 남의 소실로 들어가 수천 석 토지를 친정집 오빠에게 빼 돌린 것도 아니었다.

현계옥은 아무도 모르게 중국여자 차림으로 만주를 거쳐 중국 상해로 잠적했다.

대구 출신의 현계옥은 17세에 기생이 되어 대구에서 같은 종씨 현모(玄某) 청년을 만나 첫사랑에 빠졌다.

당시 현모 청년은 명문 재산가의 아들이요 친일파 가계인데도 훗날 민족운동 계열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했던 청년이었다.

화류계의 어린 현계옥과 첫사랑을 맺은 현모 청년은 끝내 자기의 이상과 사상을 찾아 만주로 떠나 버렸다.

여인의 집념의 불길은 사나이의 야심처럼 그리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현계옥은 독립군 김원봉을 만나 장춘, 길림성을 무대로 6년간을 지내다 상해로 가서 꿈에서 그리던 현 청년을 만났다.

현계옥은 현 청년에게 영어를 배웠고, 폭탄 제조업, 육혈포 쏘는 법 등을 익혀 독립군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본래 기생은 많은 사람을 겪는 동안 눈치와 재치가 생겨나 민첩한 말의 학문이 붙는다.

그러나 항상 웃어야 하기에 슬픈 사람, 천대의식, 자포자기, 자존심과 양심 등등. 이런 것을 잊기 위해 술에 취해 이불속에서 혼자 운다.

고대로부터 나라를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는 기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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